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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독서

[한달독서] 28일차: 공간의 미래

몇 년전,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유현준 건축가가 책을 발간했다. 제목은 그의 주전공을 나타내는 ‘공간의 미래-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이다. 팬데믹현상이 전세계로 퍼지면서 그는 여러 매체에 등장해 공간(주거)의 변화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매체에서 그가 주장하는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접하면서, 저 건축가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왜 저런 주장을 계속하는지 궁금했었다. 그런 그가 드디어 자신의 생각을 듬뿍담은 책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다가왔다.

"마스크가 만드는 관계와 공간"

45센티미터 이내에 들어오는 사람은 특별한 관계의 사람이다. 연인이나 부모 자식 정도만 그 거리 안에 들어온다. 그런데 만원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에는 모르는 사람과도 45센티미터 이내로 가까워진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다.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45센티미터 안에 들어와서 마음이 불편한 거다. 가끔은 모르는 사람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도 기분이 좋은 경우가 있다. 클럽에서 춤출 때다. 그 이유는 입구에서 문지기가 힘들게 나같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골라내서 못들어가게 선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안에 들어간 당신은 기분이 좋은 것이다. (…) 이처럼 관계는 사람간의 거리를 결정한다. 그리고 사람 간의 거리는 공간의 밀도를 결정한다. 공간의 밀도는 그 공간 내 사회적 관계를 결정한다.


작가가 설명하는 관계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내가 왜 만원버스나 지하철에서 불쾌감을 느끼는지 알게 됐다. 나는 사회적 공간 밀도에 좀 민감한 편이었구나. 그래서 항상 적당한 공간과 밀도가 필요했구나. 공간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가 점점 흥미로워졌다.

현재 도시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모두 공적 공간이다. 하늘을 볼 수 있는 자연은 고원이나 길을 걸으면서나 만날 수 있는데, 그런 공간은 모두 공공의 공간이다. 현대 도시에서 야외공간은 세수라도 하고 옷을 챙겨 입고 나가야만 갈 수 있는 곳이며, 이름 모를 타인들과 함께 공유해야 하는 공간이다. 통상적으로 이런 공간은 소셜믹스가 이루어지기 좋은 공간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전염병이 있는 시대에는 위험한 공간이기도 하다.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 자연을 만날 수 없게 된다. 이럴 때 마당이나 발코니라도 있으면 나가서 숨을 쉴 수가 있을텐데 그렇지도 못하다. 국민의 50퍼센트는 마당이 없는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그 아파트의 발코니는 발코니 확장으로 실내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팬데믹으로 공공장소에서 마음껏 활동하는 것에 제약이 많이 생겼다. 팬데믹 초기에는 특히나 거의 집에만 있으려 했고, 길거리를 걷는 것조차도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 때, 마당이 있는 집이나 발코니가 넓은 집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바깥공기를 쐬면서 사람들과의 교류 단절이 아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기분이라도 느끼면 우울한 마음이 한결 나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작가가 사적인 외부 공간이 필요하다고 여러 곳에서 주장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